[인터뷰] '실패'한 과제가 주목받는 이유

안혜정 KAIST 실패연구소 연구조교수 겸 심리학박사

 

[더테크=전수연 기자] 지난해 '중꺾마'(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라는 단어가 유행한 적이 있다. 이를 심리학 용어로 설명하면 회복탄력성, Resilience의 번역명으로 실패했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흔히 말하는 정신력을 말한다. 되돌아온다는 라틴어에서 유래했는데 회복할 수 있는 실패는 성장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KAIST가 이달 초 실패를 주제 삼아 전시, 교류, 강연 등 다양한 형태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2023 실패주간’ 행사를 진행했다. 행사에는 ‘일상에서 포착한 실패의 순간들’이라는 사진전과 학생들의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국내 뛰어난 이공계 인재들이 모인 곳에서 ‘실패’를 주제로 행사를 진행한다는 점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특색있는 행사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고자 안혜정 카이스트 실패연구소 연구조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번 ‘망한 과제 자랑대회’를 비롯해 실패주간은 어떤 행사인가요.

 

실패주간은 실패에 대한 관점을 다양화하고 구성원들의 유연성과 도전 정신 함양을 목표로 하는 KAIST 실패연구소의 다양한 활동과 연구 결과를 모아 구성원들과 소통하는 행사입니다.

 

특히 올해 실패주간은 카이스트 구성원들의 실패를 공유하는 것에 초점을 두었습니다. 카이스트 학생들의 일상에서 포착한 실패의 순간들을 담은 전시와 인생의 실패를 발표하는 망한 과제 자랑대회 등을 통해 실패의 순간을 들여다 보면 그 안에서 나름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행사의 개최 계기는 무엇인가요.

 

실패연구소는 2021년 설립 이후 카이스트 구성원들이 실패를 다양한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매월 뉴스레터를 통해 실패와 관련된 다양한 지식과 교훈을 전달하고 이 외에도 실패세미나, 에세이 공모전 등 구성원이 참여할 수 있는 사업을 진행해왔습니다.

 

아무래도 실패연구소의 활동이 인식 개선 캠페인의 성격을 띠고 있다 보니 보다 많은 구성원의 참여를 유도하고 메시지를 확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실패연구소의 여러 활동과 연구결과를 한 시기에 집중적으로 보여주면서 주목도와 메시지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이라고 생각해 기획하게 됐습니다.

 

카이스트 실패연구소의 연구 분야와 최근 연구 성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실패연구소는 공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실패 사례(사람, 연구, 기업, 사업, 정책 등)와 실패와 관련된 과학 연구 결과 등을 발굴해 온라인 이포트와 인스타툰 등으로 구성원들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지난 2년간은 한 가지 분야나 관점에서 실패를 연구하기 보다 실패를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볼 수 있도록 지식을 발굴하고 콘텐츠화하는 데 집중해왔습니다.

 

2023년에는 카이스트 학생들의 실패 경험의 특성을 규명하고 회복탄력성 증진을 지원하기 위한 방안을 포토보이스라는 방법으로 연구했는데, 이번 실패 주간에 전시된 ‘일상에서 포착한 실패의 순간들’은 해당 연구의 중간 발표 성격이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올 행사에서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을까요.

 

학생들이 자신의 성취나 성공이 아닌 실패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해본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이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어렵지 않게 심리적으로 안전한 분위기에서 자신의 실패를 꺼내 이야기하게 만들 것인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특히 망한과제 자랑 대회는 학부생 동아리인 아이시스츠(ICISTS)와 함께 준비했는데 행사와 홍보 기획 전반에서 학생들에게 친근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다가가는 것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참가 학생들의 반응과 유익한 점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행사 내용에 공감했다는 반응,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 것만으로 위로받는 기분이었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완전히 같지는 않더라도 비슷한 감정을 겪었던 실패 경험을 누구나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실패이야기는 잘 공유되지 않기 때문에 본인의 삶이나 연구과정에서 실패를 경험하는 개인은 ‘다른 사람들은 다 잘하는데 자신만 정체되거나 실패하고 있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고 그만큼 고립되기 쉽습니다.

 

이번 행사의 장점 중 하나는 자신의 실패를 꺼내어 이야기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이고 이를 통해 우리의 실패 경험이 보편성을 가지며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고 극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생생한 사례를 통해 학습한다는 점입니다.

 

향후 실패연구소와 실패주간 행사의 방향성과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 부탁드립니다.

 

향후에도 실패연구소는 카이스트 구성원들의 회복탄력성을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되는 활동을 지속해 나갈 예정입니다. 미래 인재를 기르는 데 있어 기술과 지식 역량을 키우는 것 이외에 빠르고 복잡한 과학기술환경에 대응하는 심리적 역량을 키우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본인의 연구를 진행하는 학생들이 연구과정에서 경험하는 어려움을 관찰하고 이들이 실패로부터 잘 학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연구를 준비 중입니다. 또 올해 실패주간에는 카이스트 학부, 대학원생 등 학생들의 이야기에 집중했다면 내년에는 또 다른 카이스트 구성원인 교수님과 직원들의 실패 사례를 수집하고 공유하는 등 대상을 확대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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