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터리 법'을 통해 본 기술과 환경의 양립

[더테크View] 유럽의회 배터리법 통과...‘탈착형 배터리’ 장착 조치는 기술 퇴보 느낌
자원순환 취지 백번 공감하지만 기술 진보와 양립해야

‘더테크 View’는 더테크 기자들의 시각이 반영된 칼럼입니다. 각종 테크 이슈, 그리고 취재과정에서 나온 다양한 의견과 생각들을 '색깔있는 관점'으로 풀어냅니다.

 

 

[더테크=문용필 기자] 얼마 전 유럽의회(European Parliament)에서 주목할 만한 법안이 하나 통과됐다. 배터리 설계와 생산, 폐기물 관리에 대한 규칙이 그것이다. 찬성 587표, 반대 9표라는 압도적인 표 차이로 가결됐다.

 

유럽의회가 낸 관련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법안은 지난 2020년 12월 배터리 및 폐배터리에 대한 규제 제안이 제시된 것으로 시작됐는데 배터리 수명주기의 모든 단계에서 환경 및 사회적 영향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자원순환을 꾀하고 무분별한 배터리 폐기로 인한 환경오염을 줄이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이 법안으로 인해 예상되는 조치 중 흥미로운 대목이 있다. 소비자가 쉽게 제거하고 교체할 수 있는 방식으로 디바이스의 휴대용 배터리를 설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내용을 보고 과거의 탈착형 배터리가 떠오른 것은 비단 기자뿐만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적어도 메인스트림에서 탈착형 배터리는 거의 자취를 감춘 상태다. 애플은 아이폰 초기부터 내장형을 고수해왔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5년 갤럭시S6를 시작으로 플래그십 제품에선 탈착식을 버리고 내장 배터리를 탑재해왔다.

 

내장형을 적용하면 디바이스의 두께가 더욱 얇아질 수 있고 불필요한 이음새가 사라져 더욱 높은 수준의 방수, 방진 기능이 가능해진다. 더 예뻐진 디자인은 덤이다. 물론 급할 때 예비배터리로 교체하기 어려워 다소 불편하다는 단점도 있지만 내장형이 대세가 된 지 10년 가까이 되면서 이용자들은 이미 익숙해진 상태다. 게다가 외장 배터리가 흔해졌기도 하고. 

 

그런데 유럽연합의 새 법안이 발효되면 EU 회원국에서는 탈착식 배터리를 부착한 디바이스를 출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유럽이 작은 시장도 아닌데 주요 스마트폰 생산 기업들에게는 날벼락이 떨어진 셈이다. 아마 태블릿 PC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애플의 경우엔 최초의 ‘탈착식 배터리폰’을 선보여야 할지도 모른다.

 

현 시점보다 ‘더 나은 혁신’에 목마른 유저들을 만족시키기도 쉽지 않을텐데 기술이 과거로 퇴보하는 느낌이 든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갤럭시 엑스커버5’라는 제품을 내놓은 사례도 있지만 이는 주력 플래그십이 아닌 러기드폰이다.

 

물론, 법안의 취지나 의도는 충분히 이해, 아니 공감하고도 남는다. ESG가 어느새 기업경영의 필요조건으로 자리 잡았고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가 글로벌 화두로 떠오른지 오래다. 휴대용 전자제품의 사용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폐배터리 처리는 당연히 신경 써야 할 문제다.

 

하지만 유럽연합의 법안내용은 이용자들의 니즈와 정면으로 부딪힐 소지가 다분해 보인다. 일체형 배터리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에게 탈착형을 강요하게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별안간 탈착식 배터리 디바이스를 내놓아야 하는 제조기업의 입장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단순히 배터리만 밖으로 빼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쩌면 설계 등 일부 공정을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좋은 명분이라고 해도 모든 것에 앞서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기술과 환경이라는 두 가지 명제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국내외 상당수의 ICT 기업들이 ‘RE100’에 가입하고, 친환경‧재생 소재, 부품을 사용하는 것은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어차피 기술이 진보할수록 더 많은 전력이 소비되고 탄소배출이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양자를 현명하게 아우를 수 있는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닐지라도 말이다. 우리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선 두 가지 모두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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