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테크 이지영 기자] 국내 연구진이 박테리아를 이용해 다양한 색상의 친환경 섬유를 한 번에 생산하는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화학 염색이 필요 없는 ‘무지개색 바이오 섬유’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지속 가능한 섬유 제조의 새로운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KAIST 이상엽 특훈교수 연구팀은 색을 만드는 미생물과 섬유를 만드는 박테리아를 함께 배양해,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색이 입혀진 박테리아 셀룰로오스를 단일 공정으로 생산하는 원스텝 공배양 플랫폼을 구축했다고 19일 밝혔다. 기존 친환경 섬유 기술이 제한적 색상만 구현했던 한계를 넘어, 하나의 공정에서 전 스펙트럼 색상을 구현한 최초 사례다.
박테리아 셀룰로오스는 고순도성과 높은 강도, 우수한 보습력, 생분해성을 갖춘 천연 고분자 섬유로 석유 기반 합성섬유를 대체할 소재로 주목받아왔다. 하지만 기본 색이 거의 흰색에 가까워 다양한 색 구현이 어렵고, 섬유 업계는 여전히 석유 유래 염료와 독성 시약을 사용하는 전통 염색 공정에 의존해 환경 문제를 야기해왔다.
연구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색소 생합성 미생물과 셀룰로오스 생산 박테리아를 공배양하는 전략을 개발했다. 대장균은 색을 만들고, 박테리아는 섬유를 만드는 방식으로, 두 기능이 하나의 배양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결합되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빨강·주황·노랑·초록·파랑·남색·보라색 등 무지개 전 색상의 섬유를 별도 화학 처리 없이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핵심은 고도 설계된 색소 생산 대장균이다. 기존에는 대장균이 색소를 많이 만들면 세포 내부에 축적돼 성장이 저해되는 문제가 있었지만, 연구팀은 세포막 구조를 조절해 색소를 세포 밖으로 효율적으로 분비하도록 만들었다. 이를 통해 대장균은 부담 없이 천연 색소를 과량 생산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보라색 계열 색소의 대량 생산은 기술적 난도가 높아 생명공학 성숙도를 입증하는 지표로 여겨진다. 연구팀은 세계 최고 수준인 16.92 g/L 규모의 생산량을 달성해 플랫폼의 기술력을 입증했다. 이들 색소는 항산화·항염·항균·항암 가능성까지 연구되는 고부가가치 바이오 소재로 의약·화장품 산업에서도 활용성이 높다.
연구팀은 카로테노이드 등 기존 색소 생산 균주까지 통합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요구하는 전 색상 구현이 가능함을 확인했다. 또한 공정 자체가 원스텝 방식이기 때문에 대량 생산 확장 가능성도 확보했다. 이는 기존 석유 기반 염색 공정을 친환경 바이오 제조로 전환할 수 있는 실질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이상엽 특훈교수는 “지속 가능한 섬유와 기능성 바이오소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가운데, 이번 플랫폼은 화학 공정 없이 단일 단계에서 다양한 기능성 소재를 생산할 수 있는 핵심 기반 기술”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KAIST 주항서 박사과정생이 제1저자로 참여했으며, ‘Trends in Biotechnology’ 11월 12일자에 게재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