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쓴소리’가 바라보는 한국 로봇의 미래

[전문가 인터뷰] 고경철 전 카이스트 교수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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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고경철 전 카이스트 전자공학부 연구교수 上

 

 

[더테크=문용필, 전수연 기자] ‘미스터 쓴소리’. 국내 로봇 업계에서 고경철 전 카이스트(KAIST) 전자공학부 연구교수(現 고영테크놀러지 전무)를 부르는 별명 중 하나다.

 

별명 그대로 고 전 교수는 <더테크>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로봇산업에 대한 ‘직설’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여기에는 국내 로봇산업의 무한한 성장을 바라는 따뜻한 시선 역시 담겨 있었다.

 

고 전 교수가 강조한 것은 업계의 분발, 그리고 기술 고도화였다. 일견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쉽지만은 않은 과제들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고 전 교수는 인터뷰를 통해 현재 로봇산업계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지만 한편으로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로봇산업을 이끌어갈 젊은 인재와 혁신기업들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7년 <전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내 로봇 산업이 세계시장 경쟁력을 갖췄는지 의문”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났고 국내 로봇산업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보는데요. 현재와 비교해서 현재 국내 로봇산업의 경쟁력은 어느 정도 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6년 전 비판적인 이야기를 꺼냈던 이유를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 같네요. ‘유니버셜 로봇’이라는 덴마크 회사가 있어요. ‘협동 로봇’이라는 개념으로 엄청난 시장을 열었죠. 그런데 왜 우리나라에선 안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물론 미국과 일본이 당연히 먼저 시작했지만 우리도 로봇산업을 늦게 시작한 건 아니거든요.

 

참여정부 때에는 지능형 로봇을 국가 성장 동력으로 삼아 지원했죠. 당시 막대한 R&D 예산을 쏟아부었습니다. 연구도 풍성할 수 밖에 없었고요. 그런데 혁신적인 로봇이 나왔을까요? 수술로봇을 예로 들면 다빈치의 로봇이 전세계 병원의 수술실을 다 휩쓸 때 우리도 개발하자고 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개발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실제현장에는 외산 로봇 위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요. 자체 로봇을 생산하고 있는 국내 유수의 대기업조차 막상 자사 제조라인에서는 70% 정도 외산에 의존하고 있어요.

 

정부가 로봇산업 육성을 시작한 건 새로운 먹거리 창출을 위해서인데 저는 (로봇 기업들이) 결과로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이른바 ‘내부 비판’을 한건데 역으로 저도 ‘사다리 차기’ ‘동종업계에 활겨누기’ 등 욕을 많이 먹었어요.

 

현재 전 세계 로봇산업은 또 한번 폭풍 속에 있어요. 엄청난 기술의 로봇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수술로봇의 대부분은 외산이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기업들이 협동로봇이나 자동차 제조로봇, 지능형 서비스 로봇 등을 선보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게임 체인저’가 될만한 로봇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아요. 20년 가까이 로봇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요. (인터뷰를 했던) 5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입니다.

 

국내 로봇산업은 더욱 열심히 달려야 합니다. (글로벌 기술과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는 둔화추세죠. 제조, 국방, 의료 등 다양한 로봇분야에서 많은 우리나라 제품들이 명함을 내밀지 못하고 있어요.

 

다만 희망은 있습니다. 국가의 지원 덕분에 전문가와 로봇전문가를 꿈꾸는 학생들이 많아졌어요. 이런 희망을 이어가려면 중견 전문가들과 정부 지원으로 성장하는 로봇 기업들, 교수들, 개발자들이 좀 더 분발해야 합니다. 제가 비록 업계에서 ‘쓴소리의 대명사’가 되고 말았지만요. 저는 심지어 로봇생태계의 ‘물갈이론(論)’도 주장했거든요. 수족관의 물을 새 것으로 교체하듯 정말 실력있고 젊은 스타트업들이 부상해 희망과 혁신 의지를 갖고 나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미스터 쓴소리’ 다운 고견이었던 것 같습니다.(웃음) 최근 대기업들이 로봇사업에 부쩍 관심을 보이는 모습입니다.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들과 협업하거나 아예 로봇 전문 회사를 만드는 등 형태는 여러 가지인데요. 대기업의 로봇 사업 진출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작은 국내 시장에서의 경쟁만으로는 부족해요. 이제 ICT 영역은 국가간의 경쟁으로 향하고 있죠. 1조 달러 규모를 넘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나오고 있죠. 국내 기업들이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이들에 비하면 경쟁력이 부족할 수 밖에 없어요.

 

스타트업들은 니치마켓을 계속 공략하면서 자생력과 경쟁력을 키워나가고 국가의 (산업) 근간이 되는 대기업들과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모델을 만들거나 국가가 직접 나서야 합니다.

 

말씀하신 맥락에서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최근 정부의 첨단산업전략을 보면 로봇산업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부의 로봇산업 육성 방안에 대한 평가와 제언을 부탁드립니다.

 

로봇을 국가적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포부는 보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동안 (로봇 산업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은 해왔어요. R&D나 인력 차원에서 어느정도 됐지요. 기술개발자금, 시범사업, 보급 초기 구매, 스마트팩토리 구축 등도 해줬고요.

 

다만 이제는 직접적인 정부 지원은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이제는 직접적인 지원보다는 ‘기회’를 지원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직접 먹을 것을 주고, 집을 지어주고 이런 거 보다는, 생태계를 이끄는 인력을 양성하는 등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해서 많은 미래 꿈나무들이 로봇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우도록 하는 것이죠.

 

현재 우리나라의 가장 큰 문제중 하나가 바로 ‘이공계 기피 현상’이에요. 이공계 개발자들이 고액연봉을 받는다고 하지만 그 정도가 되려면 경쟁도 치열하고 요즘 말하는 ‘워라밸’도 포기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직업 수명이 짧을 수 밖에 없죠. 그렇게 고생해서 미래가 보장된 것도 아니고요.

 

AI 시대에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많은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필요합니다. 기술 위주의 시대가 올텐데 이를 놓치게 되면 자원으로 먹고살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자원 빈국이잖아요. 인구도 줄어들고 있고요.

 

저는 젊은이들이 미래 테크 산업에 거침없이 도전하고 기업도 일구고 이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국가가 도전정신을 심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창업 생태계를 국가기 지원해주는 방향으로 선순환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최근 국내 시장에서 중국산 로봇들의 공세가 만만치 않아 보입니다. ‘로봇 굴기’라는 표현이 언론 기사에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에 대한 의견이 있으시다면요.

 

중국은 어마어마한 자원과 인구를 내세워 산업경쟁력을 갖췄습니다. 이를 우리가 이기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로봇의 경우에도 이미 (우리나라 수준을) 거의 쫒아왔고 오히려 인공지능의 경우에는 우리보다 나은 측면도 있어요. 중국의 논문수나 특허수를 보면 우리나라를 압도하죠. 이미 (기술적으로) 추격 당한 부분도 있습니다.

 

이전에 (ICT)제조 시설들이 중국에 상당 부분 몰려 있었지만 지금은 두 가지 측면에서 다시 리쇼어링(reshoring)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중국의 경제적 수준이 올라가면서 제조단가도 덩달아 높아졌고, 그래서 동남아시아로 제조 시설들이 쉬프트 되고 있죠. 두 번째는 미국과의 갈등인데요. 중국에 기술을 유출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죠. 역설적으로 보면 그만큼 중국의 국가 경쟁력이 강해졌다는 반증이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과거 일본같은 형국에 빠진 것 같아요. 그간 제조경쟁력으로 버텨왔는데 이제는 중국이 그런 경쟁력을 갖게됐기 때문이죠. 일본의 근본적인 문제도 마찬가지였거든요. 그래서 기술고도화가 필요해요. 현재 대한민국의 위상은 예전보다 현저히 높아졌지만 기술 선진국으로 갈 것이냐, 아니면 정체기에 머무느냐의 갈림길에 서게 된거죠. 현 상황에서 상황을 반전시키려면 결국 AI와 로봇 기술을 고도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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