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도, 하이닉스도 진심인 AI 메모리 ‘HBM’

다시 갱신된 HBM 시장 성장률, 100% 넘어갈 전망
점유율 경쟁보다 시장 규모 커지면 Win-Win 구도 형성

 

[더테크=조재호 기자] 차세대 인공지능(AI) 칩인 엔비디아의 ‘GH200’과 AMD의 ‘MI300’이 올해 4분기 출시를 예고했다. 이에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사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두 기업의 기술 경쟁과 점유율 추이에 주목할 것으로 보인다.

 

AI 칩 출시는 HBM 주문이 늘어난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SK하이닉스나 삼성전자 같은 공급사에 반가운 흐름이다. 글로벌 빅테크인 구글과 테슬라, 아마존 등도 자체 칩과 서버 설계에 나서고 있어 HBM 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기업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대규모 데이터 처리를 위해서 HBM 탑재는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다.

 

AI 칩 시장을 주도하는 엔비디아의 H100은 HBM3를 탑재했고 차기작 GH200에는 HBM3E가 쓰일 예정이다. 경쟁사 AMD도 MI300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HBM3를, 인텔도 고성능 컴퓨팅(HPC)인 팔콘쇼어에 쓰일 메모리로 HBM3를 언급했다.


(관련기사: 엔비디아, 신규 칩 ‘GH200 그레이스 호퍼 슈퍼칩’ 공개)
(관련기사: AMD, MI300X GPU 공개… AI용 칩셋 경쟁 시작)

 

AI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고성능 반도체의 동반자로 언급되는 HBM이란 무엇일까.

 

HBM은 기존 D램 칩을 쌓아 TSV(Through, Silicon Via, 실리콘관통전극) 기술로 수직 연결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높였다. 칩 사이에 수천 개의 미세한 구멍을 뚫어 데이터를 전송하는 통로로 만들어 한번에 많은 양의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제품이다.

 

HBM3 기준으로 영화 163편을 1초에 전송할 수 있는 스택당 최대 819GB/s의 속도를 지녔다. 일반적인 소비자 시장이 아닌 대규모 컴퓨팅 시스템이 필요한 데이터센터나 서버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공간 대비 용량이나 밀도, 에너지 효율성이나 발열 부분에서 기존 D램보다 뛰어난 제품이다. 특히 AI를 개발하는 컴퓨팅 자원에 필수적인 요소로 꼽힌다.

 

HBM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보면 2013년 SK하이닉스와 AMD가 공동개발을 진행해 시장을 열었다. 삼성전자도 HBM 개발에 뛰어들면서 2세대인 HBM2와 3세대 HBM2E의 주도권을 잡았다. 4세대인 HBM3에선 SK하이닉스가 앞서 나가며 엔비디아의 독점 물량을 공급하면서 시장을 주도했다. 최근 5세대 HBM3E도 SK하이닉스가 한발 앞섰는데 고객사에 샘플테스트를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나오기도 했다.

 

(관련기사: SK 하이닉스, ‘HBM3E’ 개발…고객사 성능 검증 진행)

 

현재 HBM은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마이크론 3사가 대표적인 공급사로 꼽힌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가 지난 8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HBM점유율은 SK하이닉스가 50%로 1위, 삼성전자가 40%로 2위로 두 기업의 점유율이 90%에 달한다. 마이크론은 10%로 뒤를 이었다. 올해와 내년 전망치에서도 두 기업의 점유율을 46~49%로 시장 대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트렌드포스는 예상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 1, 2위 업체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행보가 업계의 핵심 관심사로 떠오르게 된 셈이다. 전체 D램 시장에서 HBM의 생산량 비중은 1%에 불과하지만 일반 D램보다 5배가량 비싼 고부가가치 상품이다. 이에 따라 매출액 기준으로는 10%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조사업체 모르도르인텔리전스가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HBM 시장은 2023년 20억4000만달러(2조7101억원)에서 2028년 63억2000만달러(8조3961억원)으로 연평균 105% 성장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와 관련 최성율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기존 D램 시장은 경쟁사보다 우수한 제품을 개발해 협상력을 높이는 구조였지만 HBM은 이에 더해 첨단 패키징 공정이 추가되면서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HBM은 단독 제품이 아닌 GPU나 CPU가 탑재된 하나의 칩이라는 점에서 기존 D램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B2B 제품으로 고객사와 소통을 통해 제작되는 수주형 제품이라는 점은 기존 메모리와 차이점이다.

 

 

지난 8월 트렌드포스가 다룬 올해 2분기 D램 시장 점유율 보고서는 이러한 현상을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SK하이닉스가 30.1%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2위로 올라섰는데 지난 분기보다 5.7%포인트 점유율을 끌어올린 결과다. 반도체 시장이 얼어붙은 상황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보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1위 삼성전자(39.6%)와 격차도 9.5%로 한 자릿수까지 좁혀졌다. 지난 1분기 두 회사의 격차는 43.9%, 24.4%로 19.5%포인트였다. 매출액 규모에서도 삼성전자는 45억3000만달러(6조566억원)를 기록해 지난 분기보다 8.6% 증가했지만, SK하이닉스는 34억4300만달러(4조6032억원)을 기록하면서 48.9% 성장했다.

 

AI 열풍으로 엔비디아의 GPU 수요가 폭발하면서 HBM3를 독점 공급한 SK하이닉스의 성과로 해석된다. 한국경제신문과 주요 외신 보도에 따르면 삼성전자도 최근 엔비디아의 최종 품질 테스트를 통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와 HBM 공급 논의를 시작하면서 HBM 개발과 패키징 기술 경쟁이 하반기 메모리 시장의 주요 관심사로 떠올랐다”며 “관건은 삼성전자의 패키징 수주 여부로 HBM 납품과 함께 파운드리까지 아우른 턴키(Turn key, 일괄 진행) 생산체제 구축과 협력 여부에 달렸다”고 말했다.

 

최근 엔비디아의 AI 칩 대란에 TSMC의 생산 능력을 초과하는 수요가 있었음을 강조한 것이다.

 

최 교수도 “삼성전자의 파운드리가 공급 부족을 겪는 AI 반도체 시장에서 하나의 대안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SK하이닉스와 HBM 기술 개발 경쟁을 통한 상호 시너지 효과와 함께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역량이 발휘된다면 시장을 확대할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올해 2분기까지 엔비디아와 SK하이닉스, TSMC의 협력 관계가 AI 칩 시장에서 독점적인 지위와 함께 큰 수익을 거뒀다. 하반기 분위기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AI 칩의 폭발적인 수요는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AMD나 다른 빅테크 기업의 수요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리고 이러한 시장 확대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기업에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도 “TSMC의 첨단 패키징 공정인 CoWoS로 엔비디아 물량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대안을 제시했다”며 “HBM 생산과 파운드리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기업은 삼성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제시한 대안은 TSMC와 경쟁 구도 형성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AI 칩 시장에서 절대적인 우위를 점한 엔비디아의 수요도 중요하겠지만, AMD를 비롯해 전통적인 GPU 시장 밖의 수요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미국 증시를 뒤흔든 테슬라의 슈퍼컴퓨터 ‘도조(Dojo)’를 예시로 꼽을 수 있다. 미국의 투자 매체 마켓워치에 따르면 모건스탠리가 테슬라의 평가 가치를 최대 5000억달러(665조원) 높여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도조에도 HBM이 탑재된다는 것이다.

 

테슬라를 비롯한 구글과 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의 AI 칩 개발은 잠재적인 HBM 고객사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메모리 산업의 진입장벽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 유리한 지점이다. 여기에 파운드리를 지닌 삼성전자는 새로운 고객사 유치에 유리한 지점에 섰다.

 

한편, HBM 시장 자체에 지나친 낙관론은 주의해야 한다는 의견도 지나칠 수 없다. 지난 7월 유진투자증권의 Memory Watch ‘존재감 높아지는 본딩과 패키징’ 보고서에 따르면 HBM 시장 규모는 전체 D램 시장의 약 1%인 상황으로 한국 반도체 시장의 화두로 자리매김한 것과 비교해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음을 주의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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