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테크=조재호 기자] 미국의 반도체법 가드레일 조항에 국내 기업의 요구가 일부 반영돼 확정됐다. 반도체 업계에선 발등의 불은 껐지만, 세부 규정 확인과 함께 10월 종료 예정인 대중국 수출규제 유예 연장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미 상무부는 반도체법의 ‘가드레일 조항 세부 규정’의 최종안을 지난 22일 공고했다. 이번 최종안은 3월 미국 정부가 공개한 초안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 최악은 면했다는 반응이다. 최근 중국 화웨이의 신형 스마트폰에 SK하이닉스 제품이 사용되면서 미국의 수출통제 규정 위반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올해 10월 만료 예정인 중국 공장의 반도체 장비 반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정부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0월 중국 반도체 생산 시설에 장비를 수출하는 것을 막는 수출통제 조치를 진행하면서 우리 반도체 기업들에게 1년간 한시적으로 수출통제를 유예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공장에서 전체 낸드플래시의 40%를, SK하이닉스는 중국 우시공장과 다롄공장에서 전체 D램의 40%와 낸드 20%를 각각 생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 지난 21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한미 첨단산업 기술협력 포럼’에 참석한 돈 그레이브스(Don Graves) 미 상무부 부장관은 한국 기업들의 첨단반도체 장비 반입에 대해 “한국기업들이 중국에서 합법적으로 사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2022년 8월 반도체법 발효 직후부터 가드레일 조항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미국과 긴밀히 협의를 진행해왔다. 이번에 발표된 최종안에 따라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강화와 국내 기업의 투자·경영 활동 보장을 위해 미국 정부와 협력을 지속할 예정이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더테크에 “생산능력 측정 기준이나 기존 설비 구축 측면에서 예외를 인정받은 점은 긍정적이나 세부 내용에 대한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봤다.
반도체법 가드레일 조항, 무슨 내용 담겼나
미국 정부가 내놓은 반도체법 가드레일 조항 세부 규정은 미국의 보조금을 비롯한 투자 인센티브를 받는 기업의 우려대상국 내 설비확장 및 기술협력을 일정 기준 제한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말하는 우려대상국은 중국과 북한, 러시아 이란 등을 지칭한다.
가드레일 조항 세부 규정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생산 관련 확장 가드레일(Expansion Guardrail)과 연구개발 부문인 기술 가드레일(Technology Guardrail)로 나뉜다.
우선 확장 관련 부분에선 첨단 반도체의 경우 보조금 수령 시점부터 약 10년간 웨이퍼 기준 5% 이하로 확장이 허용된다. 계절별 변동 등 업계의 경영환경을 반영해 생산능력의 측정 기준을 월 단위에서 연 단위로 변경했다. 첨단 반도체 생산능력을 5%이상 확장하면 투자금액 제한(기존 10만달러)이 있었던 규정도 기업과 협약을 통해 결정하는 것으로 변경됐다.
28nm 및 이전 세대의 레거시반도체(Legacy Semiconductor)는 10% 미만까지 적용된다. 다만 레거시반도체 설비에서 생산된 반도체의 85%가 우려대상국 시장에서 소비되는 최종제품에 활용되는 경우엔 규모 제한은 없다.
아울러 상무부와 협의하면 구축 중인 설비를 가드레일 제한 예외로 인정받을 수 있으며 기술 업그레이드 및 기존 설비 유지를 위한 확장 교체도 대중 수출통제 기준을 충족하는 범위 내에서 가능하다.
기술 가드레일의 경우 원칙적으로 우려대상기업과 국가안보상 민감 기술·품목 대한 공동 연구 및 라이센싱 참여를 제한했다. 우려대상기업이란 미국 정부의 제재 명단에 포함된 기업과 중국 등 우려대상국 정부가 소유하거나 통제하는 기업을 말한다.
다만 기존에 진행 중인 연구와 국가안보의 우려를 높이지 않는 국제표준 활동이나 특서, 품질보증 등의 분야는 예외로 했다.
한편, 미국의 반도체·과학법(The Chips and Science Act)은 자국 내 제조업 및 공급망 강화를 위해 지난 2022년 8월 발표한 법으로 재정지원, 투자세액공제, 연구개발 및 인력양성과 수혜기업의 특정 해외투자 제한(가드레일)로 구성됐다.
아울러 반도체 산업에 대한 재정지원 527억달러(70조4599억원), 투자세액공재 25% 등을 규정했다. 재정지원에는 설비투자 인센티브 390억달러(52조1430억원)이 포함됐다.
반도체 제조시설과 설비 투자액 3억달러(4011억) 이상의 대규모 반도체 소재·장비 제조 시설 및 웨이퍼 제조시설을 대상으로 하는데 수혜기업의 우려대상국 투자를 제한하는 가드레일 조항이 포함됐다.
이후 지난 2월엔 보조금 지원기준 및 절차가 발표됐고, 3월엔 이번 가드레일 조항의 세부 규정 초안을 공개하면서 5월까지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