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헬스케어, '케어'에 집중해야 가능성 열린다

[전문가 인터뷰-이병일 머스트 액셀러레이터 파트너 下]

스마트 테크‧산업 전문 미디어 <더테크>가 사이트 리뉴얼을 맞이해 다양한 테크 분야의 전문가 인터뷰를 진행합니다. 현재 주목되는 테크 영역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돕고 현재의 흐름을 짚어보기 위함입니다. 해당 분야에 관심을 가진 독자 여러분에게 좋은 인사이트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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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X] 김형택 디지털이니셔티브그룹 대표 上

[DX] 김형택 디지털이니셔티브그룹 대표 下

[디지털헬스케어] 이병일 머스트 액셀러레이터 파트너 上

 

 

[더테크=조재호 기자] 디지털 헬스케어에서 많은 사람은 ‘디지털’에 집중하기 쉽다. 비대면 진료나 디지털 치료기기 같은 새로운 무언가가 관심을 끌기 때문이다. 그리고 새로운 산업이 열리는 순간 벌어지는 자본의 향연, 숫자가 주는 자극에 매료된다.

 

그러나 이병일 머스트 액셀러레이터 파트너의 시선은 조금 달랐다. 본질에 주목하고 조화를 강조한 것이다. 속도와 혁신은 하나의 방향성이지 도달점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괜히 '레거시'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유구한 역사와 함께 발전한 산업 구조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이 이 파트너의 시각이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 관심을 보인 계기가 궁금합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 관심을 가졌다기보단 사업이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첫 직장을 MS와 IBM, 인터파크 같은 IT 업체 홍보로 시작했고, SK커뮤니케이션즈에서 신규 사업을 담당했죠.

 

싸이월드를 인수하면서 SNS를 경험했는데, 민간 성형외과나 피부과에서 20대 여성을 대상으로 광고가 엄청 들어오는 거예요. 그 당시 SK에서 차세대 사업으로 챙긴 게 헬스케어였어요. K-Plastic Surgery(플라스틱 서저리, 성형외과)가 중국에서 붐이 일기도 했고요.

 

우리 성형이 중국에 진출하는 것. 사업적인 성장을 도우면서 함께했어요. 이후 병원 마케팅과 해외진출 컨설팅, 의료학술교류 프로그램 지원 등을 경험하게 되면서 회사를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바이오·글로벌 섹터의 스타트업을 돕고 있습니다.

 

되돌아보면 의사 선생님들이 워낙 지식인이시잖아요. 환자를 돌보는 임상 의술을 행하면서 실제 병원(사업)을 경영까지 병행하기에, 오히려 제가 의료경영을 현장에서 배워야 했습니다.

 

PR 업계에서 헬스케어 시장으로의 전환이 어렵진 않으셨나요?

 

운 좋게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의료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접하는 동안 많이 배웠습니다. 그러다 병원의 해외 진출을 돕는 컨설팅 회사를 차렸죠. 2008년에 닥터온이라고 성형외과, 피부과, 정형외과, 산부인과처럼 민간수요에 부응했던 개원가의 진료과를 중심으로 중국에 진출하는 전문병원 개원을 도왔습니다.

 

3차의료기관인 종합병원도 우리나라는 간, 신장 같은 이식수술이나, 위암 같은 중증 질환 수술의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이에요. 아프리카 의료봉사 현장부터 개도국, 선진국 20여개국을 사업상 방문하게 되면서 전쟁 또는 분쟁이 있는 국가들은 당장 사람 생명을 살리는 중증 외상 외과가 절실한 반면 어느 나라든 응급외과 외상치료에서 시작해 점점 내과 질환을 고치는 수술로 의료 술기가 발전합니다. 

 

그러다 스위스나 독일, 영국, 일본, 미국, 등 선진국으로 가면 제약의학, 의약산업으로 약을 잘 먹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역사적 흐름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항암제 같은 것도 약을 잘 먹어야 하잖아요. 노바티스, 로슈 같은 세계적 빅파마(Big Pharma) 기업의 본사를 둔 스위스처럼 의료선진국은 이제 제약산업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구요.

 

이러한 흐름을 보면서 의료서비스의 패러다임이 보이자 고부가 가치는 임상시험이구나 싶었어요. 거기에 한국은 서울이 전세계에서 임상시험 1등 도시였고, 스마트폰 보급률 1등 국가니까 임상시험을 접목해보고 싶었어요. 이게 제가 의사는 아니니까, 가장 중요한 사람을 연결하는 일을 시작한 거죠.

 

그게 제가 설립한 HBA(Healthcare Business Associates)라는 의료해외진출 컨설팅 회사에서, 판교의 한 벤처빌더로부터 엔젤 투자를 받아 스마트폰으로 최초의 스마트임상시험 지원 중개 플랫폼 서비스를 기획하고 개발해, 상용화에 성공한 <올리브씨(All Live Clinical Trials)>에요. 현재는 올리브스퀘어로 물적 분할을 한 상황입니다.

 

HBA(올리브헬스케어)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ICT 규제 샌드박스 1호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갑자기 청와대에서 인터뷰를 하고 당황스러웠어요. 여기저기 유관부처 규제샌드박스 기관이 생기면서 사례 강연을 비롯해 실적보고를 요청해 부담이 됐어요. 아직 매출 실적도, 흑자전환도 아득한 상황에서 한국에서의 이제 겨우 의료인이 부담스러워한 식약처의 유권해석 규제가 겨우 해소된 거라서요.

 

HBA를 시작할 때도 6개월 동안 법무 검토하고 전문가만 200여명을 만나서 준비했는데도 3년동안 수익이 적어 여러 용역사업과 정부지원사업을 병행하며 버텨왔어요. 결국 ‘디지털 헬스’라는 산업을 그나마 곁에서 이해하고 뛰어들었다 해도 시간과 자본앞에서 저는 지쳐갔고, 한국에서의 검증시간이 더디자 싱가포르, 보스턴 등 의료선진국 본진에서 현지 협업을 직접 추진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다 저는 번아웃을 겪었지요. 고심 끝에 2020년 3월에 엑시트 했습니다.

 

그리고 코로나 기간 한국제약바이오협회(KPBMA) 글로벌사업을 담당하게 됐습니다. 미국 보스턴 MIT와 산학협력프로그램(ILP)도 진행했고요. 미 보스턴 KASBP, KABIC 등 재외 과학인 교류와, 케임브리지 이노베이션 센터(CIC)라고 하는 제약사 동반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을 챙겼습니다.

 

유럽 <BioEurope>프로그램과, 스타트업 진출을 위한 스위스 <바젤 론치>, 태국 <기술기반의약품(TBM)> 협업, 코트라와 멕시코 제약 진출 지원, 이란의 의약품 인도적 교역 등, 제약사의 해외 진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각국의 대사관 상무관 등과 교류하며 두루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스타트업을 해외진출을 인큐베이팅부터 해외진출까지 현장에서의 일을 도와주고 싶어요.

 

디지털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대해 조금 더 자세한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 뛰어들면 의학계의 의구심과 검증을 받는 부분이 너무나 큰 숙제죠. 아니면 더 라이트한 웰니스 파트로 가든지. 약과는 구분되는 건강기능‘식품’이 있잖아요.

 

건강기능식품은 기능적으로 기여하는 식품일 뿐이죠. 하지만 약이나 의료기기, 수술법 같은 건 처음부터 병원에서 하는 거죠. 이런 부분은 일반인들에게 생소할 수 있지만 다 세밀한 가이드라인과 규제과학 등급이 있습니다. 의미가 있으면 약으로 인정받고, 그래야 수가에 포함되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더 쓰게 할 수 있죠.

 

디지털 헬스케어 시장에 뛰어들면 프로토콜, 가이드라인, 규제 등 정말 어려운 분야예요. 제일 난이도가 높은 스타트업 중 하나에요.

 

지금까지 디지털 헬스케어에서 살아남은 분들을 보면요. 원래부터 이해도가 있거나 소명 의식이 있는 분. 가족 중에 환자가 있었거나 본인이 필요해서 진정성을 갖고 시작하신 분들이 많아요.

 

공통점을 찾아보면 의료를 알고 들어왔거나 너무 절박한 경험이 있죠. 전문 용어로 언메트 니즈(Unmet Needs, 의학적 미충족 수요)라고 하는데 아직 만나지 못했던 입장이거나 아니면 산업계 종사자로 일했던 사람들에게서 시작되죠. 대신 그만큼 검증도 공부도 많이 해야 할 분야에요.

 

우리나라의 디지털 헬스케어는 어려움이 많은 것 같습니다. 명확한 목적 혹은 소명 의식이 필요한 부분으로 보입니다.

 

하지 말란 이야기는 아니에요. 대부분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고 시작하죠. 몰라서 더 열심히 하기도 하고요. 다만, 몇 가지 경계해야 할 부분이 있어요. 그중 가장 위험한 게 마이오피아(Myopia), 근시안적 자기중심적 관점입니다. 내가 시도한 게 세계 최초라고 생각하는 거죠. 내가 발견하거나 생각했던 아이템이 정말 없는지 검색부터 해봐야 해요.

 

진정성도 있고 개인한테 고유한 부분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앞에 누군가 혹은 세계적인 회사들이 이미 하고 있을 수도 있죠. 현존하는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바이오 업계에서는 베스트 인 클래스(Best in Class)라고 말하는데, 현존하는 가장 좋은 방법 혹은 약이죠. 이걸 먼저 찾아보고 그다음에 내가 여기서 퍼스트 인 클래스(First in Class)가 맞다 싶을 때 아이데이션을 하고 시장에 진입하는 거죠.

 

한순간에 사라질 신기함. 와우 이펙트(Wow Effect, 순간적 효과)는 디지털 헬스케어에서 경계해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네 일상과 함께할 부분인데 진짜 좋고 안전해야지 디지털 전환이나 기술적인 놀라움 만으로는 조화와 검증을 통과하기 어렵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제일 중요한 건 환자의 베네핏(benefit)입니다. 환자에게 이득이 되냐 안되냐, 그리고 의사도 나름의 사정이 있지만 설득과 홍보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제가 말했던 페이션트 퍼스트(Patient First)라는 말도 미국 최고의 병원으로 꼽히는 메이요 클리닉의 “The needs of the patient come first” (환자의 필요를 최우선으로) 슬로건과 같은 의미입니다. 정말 당연한 이야기인데 참 복잡해졌습니다.

 

본질과 철학은 환자 중심인데 사업으로 풀려면 누가 투자하고 서비스를 만들어서 누가 사줄지 하는 부분을 고려해야 하죠. 거기서 많이 흔들리기도 하고 취지 자체가 흔들리는 것 같아요. 사업 추진과 본질의 문제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정말 어려운 숙제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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